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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역사기행] 거제의 대문을 두드리다

samsungshi 2016. 10. 20. 16:14


거제는 더이상 섬이라고 불리기 무색할 정도로 교통이 잘갖춰져 있습니다. 
거제 육상교통의 첫 관문은 거가대교와 거제대교로 양분되어 있는데요.

그렇다면, 육지와 이어지는 다리가 없던 예전 거제도의 첫 관문은 어디였을까요?

육지(통영시 용남면)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신거제대교를 지나
차량으로 2~3분 거리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위치한 거제관광 안내소를 보신 적이 있으실텐데요.
바로 여기가 거제의 첫 관문으로, 과거 육지에서 거제도로 들어오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곳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오량성'인데요.

거제도의 대문이자 첫 관문, 오량성으로 다함께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량성은 육지에서 거제로 넘어오면 처음 마주하는 곳이었습니다.
오량성은 역(驛)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고려시대에 생겼다 폐원된 후 조선시대에 다시 부활했습니다.

지금은 역이 운송수단의 정거장의 역할을 하지만,
과거에는 말을 타고 소식을 전할 때 지친 말들을 교환해서 타고갈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역의 역할을 맡았던 당시의 오량성에는 4마리의 말과 말을 관리하는 20명의 관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거제도는 제주도보다 더 많은 유배자들이 유배를 온 곳이기도 합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합쳐 500명 이상의 유배자들이 이곳 오량성을 거쳐 거제도로 들어오게 됩니다.
고려시대 정중부의 난(亂)으로 유배오게 된 의종 역시 이곳에서 지내게 됩니다.
의종은 평상시 평지인 이곳 오량성에서 지내다가 위험한 상황이 감지되면
오량성 뒤로 보이는 둔덕기성으로 피신을 가기도 했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서쪽 치성을 만나게 되는데,
새롭게 보수를 해서 보기 좋지만 획일적으로 보수되어 인위적인 냄새가 가시지 않네요.



사진에 보이는 안내에서는 조선시대 초기 이후의 축성술이라고 하지만
이런 획일적인 방식으로 축성된 성벽은 주로 조선 중기의 형태이기에 복원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획일적으로 축성이 된 이유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성들을 재정비하면서 축조방식을 획일적으로 표준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오량성을 복원할 시 기존에 있었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복원을 했는데요.
다른 곳에서는 쉽게볼 수 없는 모습의 성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동쪽 성벽의 흔적은 상당히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위 사진의 도로가 예전에는 동쪽 성문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길이라는게 그냥 생기기 보다는 사람이 사용하면서 생기는 것이니까요.

또한 그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동쪽 치성 역시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양호하게 남아있는 오량성의 성곽둘레를 조금만 더 관리하고 홍보해서
관광자원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제 유일의 역이었던 오량성은 현재 역의 흔적은 사라지고 성만 남아있으며,
그 성마저 훼손된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성의 흔적은 많이 남아있어
시간이 더 흘러가기전에 복원하여 거제의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또 다른 거제의 역사를 알려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거제도에는 둔덕기성, 고현성, 사등성, 옥산금성, 구조라성, 가배랑성, 다대산성,
율포성, 지세포성, 영등성 등 우리가 알고있는 것보다 많은 성들이 있는데요.
그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면서도 외면받는 곳이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러한 성들 중에서 경상남도 기념물 제109호로 지정되어있는
'거제의 관문', 오량성으로 한번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