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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안겨준 행복한 이야기

samsungshi 2015. 4. 23. 17:49

4월 23일은 삼성중공업이 감사나눔 활동을 전개한지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감사 리더 교육, 100감사 쓰기, 부서 간 감사 릴레이, 5감사 어플 등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감사 나눔 활동을 추진해 왔는데요. 그 결과 곳곳에서 감사가 안겨준 행복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감사를 만나 인생이 달라졌다는 두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골통 서반장이 변했어요"


툭 하면 화를 내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가족들은 가장인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일 뿐이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사내의 감사 나눔 교육을 들었습니다. 5감사를 채우지 못하고 전해진 3감사에 아내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교육을 듣던 중 그의 머릿속에는 '그래 이거야'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어렵게 마음을 다 잡으며 100감사를 적어 아내에게 보냈습니다. 아내와 주변 사람들은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거 아니냐'며 100감사에 당황했죠. 

감사 리더 서병수 반장(조립1부 조립2과)의 감사 나눔 활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후 그는 매일 매일 아내와 아이들에게 5감사를 적어 보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아내는 말만 앞서는 것이 아니냐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달라며 가족들을 다독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감사를 쓰면서 모든 문제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요. 감사를 통해서 가족들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가족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을요"

그렇게 3개월만에 드디어 아이들에게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어두웠던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으며 아빠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감사 나눔은 2년 동안 계속 됐습니다. 그 사이 가족들은 모두 서로에게 한 번 이상의 100감사를 썼으며 특히 서 반장은 세 자녀들의 생일마다 100감사를 써서 선물했습니다.

어느새 서병수 반장의 집에는 10개가 넘는 100감사 족자가 걸렸으며 그 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장 먼저 부부 싸움이 사라진 것인데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시부모님을 모시고 아이 셋을 낳아 기른 아내는 마음과 달리 종종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후회할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변했습니다.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아이들에게도 더 이상 짜증내지 않았습니다. 또한 감사는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미래의 꿈까지 찾게 해줬습니다.

"매일 5감사를 적어야 하니 아이들을 관찰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우연히 큰 아이가 글씨를 잘 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글씨를 칭찬하며 디자인을 배워 보지 않겠냐고 했더니 대학도 가지 않겠다던 딸 아이가 변하더라고요. 목표가 생기니 열심히 공부했고 올 해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던 내성적이기만 했던 둘째 딸 아이의 표정이 몰라 보게 밝아졌습니다. 놀리는 친구들을 이해하는 여유까지 생겼고요. 막내 동생은 아픈 누나를 잘 보살폈고 나날이 성적이 향상됐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감사 나눔에서 비롯됐다는 서 반장.

"감사 나눔은 저에게는 로또보다 큰 대박입니다.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여러 번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습니다. 제가 시작한 감사 나눔이 저희 가정에 행복과 더 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감사 나눔을 시작하게 도와 준 회사에 너무나도 고맙다는 서 반장. 그는 앞으로도 감사 전도사가 되어 행복을 전파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생의 머리를 가위로 자른 간 큰 아빠, 주 5일 술을 마시고 주말에는 혼자 등산을 갔던 남편. 감사 나눔 교육을 만나기 전까지의 김병기 직장의 모습입니다. 가기 싫다고 툴툴대며 떠난 1박 2일 감사 나눔 교육에서 저녁 시간 까지도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시간 아내에게 100감사를 쓰라고 할 때도 그는 마지 못해 몇 개를 채우고 있었죠. 주변 다른 직반장들이 하나 둘 자랑스러운 얼굴로 100개를 채우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기가 생겼습니다. 나도 써 보자 하고 써 내려 가도 20개가 고작입니다.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은 하얘졌습니다. 지금까지 시집 와서 고생한 아내에게 나는 무엇을 해 줬을 까 하는 죄책감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지요.

"막막해 하고 있으니 강사가 연애 시절부터 고마운 것들을 써 보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집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생각 하면 하나씩 써 내려 가는데 가슴속에서부터 울컥 하면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 100감사를 다 채우고 나온 저는 그 길로 산청 연수소 운동장으로 가서 지금까지 집 사람과 아이들에게 잘못 한걸 뉘우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시간 이후부터 김 직장은 달라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은 자신 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굳게 다짐했죠. 어렵게 작성한 100감사를 선물한 그는 아내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아내는 며칠 뒤 생일날 가장 좋은 선물을 받았노라며 100감사 족자를 들고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포옹해 주는 아내를 보며 그의 확신은 단단해 졌습니다. 그 후 싸움이 생길 때마다 그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은 숙제가 있었죠. 딸 아이가 중학생일때 엄마와 크게 다투는 걸 본 그는 아이의 머리를 가차 없이 자르고 만 것인데요. 사춘기인 딸은 그 이후로 엇나가기 시작했고 그와는 대화도 하지 않았으며 반항은 더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감사 나눔 교육을 듣고 난 후 그는 매일 딸아이에게 5감사를 적어 보냈습니다. 하지만 딸 아이의 반응은 묵묵 부답이었죠.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반응이 없던 딸에게서 처음으로 답장이 왔습니다 "네" 라는 한 글자 였죠. 그 이후에도 딸은 또 오랫동안 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흘러 두 번째 온 답이 "네♥"였습니다. 딸이 보낸 하트 이모티콘을 보고 그는 화장실에 가서 엄청난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녀 사이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등의 답장이 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김 직장과 딸은 감사 어플을 통해 매일 감사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딸의 표정은 전보다 훨씬 밝아졌으며 주위에 친구들도 더 많아지고 동생을 잘 챙기는 자상한 누나가 되었습니다.

감사 나눔 활동을 만나며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권위적이고 딱딱한 모습의 김 직장은 행복하고 활기찬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친구 같은 아빠, 다정한 남편이 되었죠.

"저에게 감사는 미소입니다. 회사와 집 모두에서 불평 불만이 많던 저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웃음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

마지막으로 김 직장은 감사 표현으로 상대방이 변할꺼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활동하라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