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화에 이어 통영 세병관에 대한 전설과
통제영에 속해있는 문화유산들을 함께 탐방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화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클릭!~
[우리동네 역사기행] 제1화 통영은 왜 통영일까?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1605년 처음 세워졌으며,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팔작집입니다.
장대석기단, 50개의 민홀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채나 창호 없이 통칸으로 트여있어,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그대로 나타내는 곳입니다.
지난 칼럼인 '거제역사탐방'에서 함께했던 기성관(거제면)을 생각하신다면 이해하기 훨씬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세병관'이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입니다. 왠지 시적(詩的)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나요?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세병관을 제외한 통제영의 모든 건물이 헐리고
학교, 법원, 검찰, 세무서 등이 들어섰으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보수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세병관에 대한 전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기 위해 수많은 군사들을 동원했습니다.
이 중, 세병관을 짓기 위해 많은 군사들이 터를 닦고 초석을 나르고 큰 나무기둥을 세우는데,
하나를 세우고 또 다른 하나를 세우면 금방 넘어지고, 또 다시 세우면 넘어지는 일이 반복됐다고 합니다.
온종일 일해도 기둥 하나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하루가 저물자
이를 지켜보던 통제사가 작업을 멈추고 즉시 제물을 차리라 지시했고,
스스로 제관이 되어 토지신에게 고시레를 하여 세병관을 창건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날 밤, 새벽녘 잠이든 통제사의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만백성을 구하고자 한다'는 통제사의 정성을 헤아리면서,
그가 일러주는 비방을 지켜야만 세병관의 건립이 가능할 것이라 전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 비방이란, 사시(巳時, 오전9~11시) 경, 세병관 입구 고갯길에 철립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우물에 집어넣고 고사를 지내야된다는 것입니다.
놀라 잠에서 깬 통제사는 꼭두새벽부터 군사들을 동원해 우물을 파게 한 후,
언덕위 세병관 터에서 시간이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 때, 저 멀리 고갯길에서 크고 검은 쇠갓을 쓴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즉시 포박해보니,
삼월 삼짓날 꽃부침을 붙이기 위해 솥뚜껑을 이고가던 가련한 여승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제사는 그 여승을 우물에 빠뜨린 후 세병관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이 있은 뒤 비로소 거대한 세병관 건물의 창건은 물론,
삼도수군통제영 설영을 위한 모든 기초공사 또한 아무 탈 없이 진행됐다고 합니다.(「통영시지」내용 中 발췌)
- 통제사 비군
세병관을 지나 운주당으로 이동하다 보면 '통제사비군(統制使碑群)'을 만나게 됩니다.
통제사비군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58기의 비석들이 흩어져있던 것을
현위치로 모아 네 줄로 나란히 세워놨는데요.
통제사가 부임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뒤, 지방의 군, 관, 민이 세운 일종의 송덕비입니다.
- 감정의뢰중인 비석들
위의 사진들은 2014년 11월, 통영시 무전동에서 추가로 발굴된 비석들로,
국립문화재 연구소의 감정의뢰를 위해 임시 보관되고 있었습니다.
- 백화당
통제영의 송덕비림을 지나면 중국 사신 등의 손님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 백화당이 있고,
- 공내헌
긴박한 전시사정 시 각종 군수품들의 자체조달을 위해 12공방을 관장했던 공내헌이 있으며,
- 병고와 병고내부
통제영의 병기와 화포 등을 관장하던 병고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주전소 유적지인 주선소 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찾아간 삼도수군통제영은
기대이상으로 조선수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이벤트도 준비되어 있어 하루코스로 다녀오시기 좋을 듯 합니다.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소개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만,
저의 얕은 지식과 더불어 이곳에 대한 여운을 남겨둬야
이 칼럼을 보신 독자분들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마무리를 하기 전에...
통제영을 나오다가 입구에 한 분을 만나뵙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분(?)'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혹시 이름이라도 아시는 분이 계시지 않나요?^^
힌트를 드리자면 칼럼 제목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
정답은, '벅수' 입니다.
경남지역에서 통칭 '벅수'라고 불리는 장승인데요.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일반적인 장승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만 기억할 수 있는데,
삼도수군통제사 앞을 지키는 장승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유일하게 채색이 되어있는 '벅수'라 전국적으로도 유명합니다.
정식이름은 통제영의 현 주소지가 문화동이기에 '문화동 벅수'로 불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윗지방에서는 나무로 만들어지며 '장승'으로 불리고 있으나,
영남과 호남지방에서는 돌로 만들어지며 '벅수', '법수'라고도 불립니다.
제주도에서는 아시다시피 '돌하르방'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벅수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데요.
눈이 붉고 어금니가 내뻗어져 있으며 혀가 늘어져 무섭게 생겼지만,
예전에는 바보 같은 사람 또는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벅수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그러니, 혹시 누군가가 '벅수야'라고 부른다면... 조금 생각을 해보셔야 할 듯 합니다.
- 통영 문화동 벅수
'문화동 벅수'는 벅수 그 자체의 얼굴형에 더 무섭게 생겼지만,
권위적인 장승의 모습에서 탈피해 우리에게 가깝게 인식되는 민초적인 장승입니다.
단순히 우리 곁에 있는 돌덩이가 아닌, 오랜시간 우리와 함께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우리들의 안전과 번영을 지켜주는 친근한 수호신인 것이죠.
우리회사의 안전과 수주 대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문화동 벅수에게 기도를 올려봅니다.
다음 기회에 거제에 있는 장승과 벅수를 탐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다음 시간에는 명나라로부터 8가지 보물을 받은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충열사로 가보겠습니다.
이번 칼럼을 계기로 우리 주위의 문화유산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내 매체인 '社생활이야기'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며,
거제지역의 역사가 담긴 현장을 칼럼에 담아 큰 호응을 얻은바 있다.
최근 <우리동네 역사기행>을 통해 거제 인근 지역까지 발을 넓히며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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