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선해운업계에 천연가스 추진선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게 되면 벙커C유(油)로 선박용 디젤엔진을 구동할 때보다 오염물질 배출량이 줄어들고, 연료비가 적게 들기 때문입니다.
만디젤(MAN D&T), 바칠라(Wartsila)와 같은 엔진 제작업체에서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고효율의 엔진 개발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엔진 시스템에 대한 해운사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요. 그에 따라, 새 엔진을 적용한 선박을 수주하기 위해 조선 회사들도 기술 개발과 마케팅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거 아시나요? LNG선은 처음부터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는 LNG선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BOG(Boil Off Gas, 증발가스) 때문입니다.
LNG선의 숙명 - BOG (Boil Off Gas)
LNG는 천연가스를 영하 163℃로 냉각해 액체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천연가스를 액화시키면 부피가 약 600분의 1로 줄어들게 됩니다. 기체 상태일 때보다 더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죠.
LNG를 운송하기 위해 LNG선은 배 안에 특수한 화물창을 설치하는데요. 화물창 내부는 영하 163℃의 극저온에도 견딜 수 있는 니켈 합금강 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제작합니다.
▲ LNG선 화물창 내부
화물창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LNG가 천연가스로 기화되기 때문에 영하 163℃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LNG선 화물창은 외부로부터 열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열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열이 유입되는 것을 100% 차단하는 방열시스템은 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화물창 내부의 LNG는 매일 전체 운송량의 약 0.15%가 기화됩니다.
기화된 BOG는 화물창에서 빼내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화물창 내부 압력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폭발할 수도 있거든요. 빼낸 BOG는 선박 연료로 사용하거나, 액화시켜서 다시 화물창 안으로 돌려보내던가, 그마저도 안되면 태워버립니다.
▲ BOG를 처리하는 세 가지 방법
BOG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 '스팀터빈엔진'
LNG선이 처음 등장한 1960년대. 선박 기술자들은 BOG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스팀터빈엔진을 떠올렸습니다. LNG선에 스팀터빈엔진을 장착하고, BOG를 그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죠. BOG로 보일러의 물을 끓여 발생한 고압의 스팀으로 스팀터빈을 구동하고, 이 회전력으로 프로펠러를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스팀터빈엔진은 열효율이 30% 밖에 안 된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연료 100이 투입된다고 하면, 실제 프로펠러 구동에 쓰이는 에너지는 30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고압의 스팀가스에 의한 사고 위험, 과다한 CO2 배출량 등도 문제입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는 스팀터빈엔진을 장착한 선박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팀터빈엔진은 BOG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음 LNG선에 장착된 1964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40여년간 LNG선의 메인 엔진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스팀터빈엔진의 장기집권을 끝낸 'DFDE'
고(高)기술 고부가가치 선박의 대표주자로 불리던 LNG선에 효율이 낮은 외연기관인 스팀터빈엔진이 장착돼 있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었죠. 그러던 중 바칠라社가 개발한 DF 엔진을 활용한 'DFDE(Dual Fuel Diesel Eletric)' 시스템이 스팀터빈엔진을 대체할 유력한 후보로 등장했습니다.
DF(Dual Fuel)엔진은 열효율이 우수한 내연기관으로 천연가스와 디젤오일을 모두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엔진입니다. BOG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DFDE는 BOG로 DF엔진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 뒤, 이 전기로 프로펠러와 연결된 모터를 돌려 선박을 구동하는 방식입니다. DF엔진은 발전용 엔진인 셈입니다.
DFDE의 열효율은 약 41~43% 수준입니다. 스팀터빈엔진에 비해 엔진 효율이 30% 이상 높은 셈이죠. 이는 연간 수백만 달러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DFDE는 고온고압의 스팀을 사용하는 스팀터빈엔진에 비해 안전성이 탁월하고, 운항시 발생하는 산화탄소화합물(COx)를 획기적으로 줄인 친환경 시스템입니다.
▲ 스팀터빈엔진과 DFDE 비교
이러한 장점에 힘입어 DFDE는 2000년대 중반부터 스팀터빈엔진을 몰아내고 LNG선의 새로운 추진시스템으로 채택되었으며, 최근까지도 LNG선 추진시스템의 '대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참고로, DFDE 시스템을 적용한 이른바 '전기추진 LNG선'은 삼성중공업이 2001년 12월에 세계 최초로 개발했답니다.
▲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DFDE LNG선
LNG선에는 새로운 시도 '저속디젤엔진'
LNG선과 달리, 오늘날 운항하는 대부분의 상선은 벙커C유를 연료로 하는 선박용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디젤엔진으로 프로펠러를 직접 돌리는 것이죠.
디젤엔진으로 프로펠러를 직접 구동하는 것이 DF엔진으로 전기를 생산해 모터를 돌리는 것보다 추진 효율이 더 좋습니다. LNG선의 경우에도 BOG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디젤엔진을 장착하는 것이 더 낫겠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카타르 국영해운사인 QGTC인데요. 이 선사가 보유한 세계 최대급 LNG선 40여 척에는 벙커C유를 연료로 쓰는 저속디젤엔진이 장착돼 있습니다. BOG 문제는 재액화장비를 이용해 자연증발한 가스를 다시 액화시켜 화물창에 되돌려 넣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디젤엔진을 장착해 엔진 추진효율이 더 좋고, BOG를 화물창에 되돌려 넣기 때문에 LNG 화물의 손실도 방지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그렇다면, 다른 선사들도 이러한 방식을 채택했을까요?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상에 재액화장비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초기 투자비용, 재액화장비를 가동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DFDE시스템이 디젤엔진 방식보다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QGTC가 보유한 LNG선은 화물창 크기가 21만㎥~26만㎥로 기존의 LNG선의 1.5배~2배에 달하는 초대형 선박입니다. 배가 큰 만큼 엔진 출력과 효율이 좋아야 하고 또 화물창이 크기 때문에 자연 증발되는 BOG의 양(量)도 여느 LNG선보다 더 많다는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젤엔진을 장착했던 것입니다.
▲ 디젤엔진을 장착한 세계 최대 크기 LNG선_삼성중공업 건조
천연가스엔진으로 프로펠러를 직접 구동할 수는 없을까?
카타르가 주도한 디젤엔진의 반란(?)은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DFDE의 시대가 계속되는 것일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면서 프로펠러를 직접 구동하는 새로운 엔진이 개발됐기 때문입니다.
엔진 제작사인 만디젤(MAN D&T)이 개발한 ME-GI(Main engine Electronic control Gas Injection) 엔진과 바칠라(Wartsila)의 X-DF(eXtra long stroke Dual Fuel) 엔진이 그 주인공들인데요.
이 두 엔진은 벙커C유와 천연가스 모두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엔진일 뿐 아니라, 기존의 선박용 디젤엔진과 마찬가지로 프로펠러를 직접 구동하기 때문에 엔진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DFDE 시스템보다 연비가 약 10% 가량 우수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새로운 엔진시스템은 BOG 재액화의 경제성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잠깐! BOG를 연료로 사용하는 데 재액화가 왜 필요하냐고요?
사실 LNG선에서 발생된 BOG를 모두 연료로 소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엔진을 풀가동해도 시간당 약 1t 정도의 BOG가 남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잉여 BOG는 별도의 연소시스템을 사용해서 태워버립니다. 선박에 재액화장비를 설치해서 남는 BOG를 LNG로 다시 액화하면 되겠지만, 재액화장비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과 장비 가동에 사용되는 에너지 비용 등을 감안하면 그냥 태워버리는 게 더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엔진시스템에서는 잉여 BOG를 재액화하는 것이 용이해 졌습니다.
새로운 엔진은 압축된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공급시스템 내에 압축기가 설치되는데요. BOG를 LNG로 재액화하는 데도 압축기가 사용된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기체상태의 가스를 압축해 고온고압의 기체로 만들고 냉각수 등으로 냉각해 저온고압 상태로 바꾼 뒤, 팽창기를 통해 기체의 압력을 떨어뜨려 저압의 극저온 상태로 냉각시키는 것이 재액화 공정의 기본 프로세스거든요.
결론적으로 새로운 엔진시스템에는 압축기가 기본적으로 설치되기 때문에, 약간의 투자를 더해 열교환기와 팽창기만 추가로 장착하면 연료로 사용하고 남은 잉여 BOG를 재액화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 시스템은 종전의 DFDE 시스템보다 엔진효율이 높을 뿐 아니라, 잉여 BOG까지 재액화할 수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최근 많은 선사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점차 시장점유율을 확대해, 머지않아 DFDE 시스템을 대체할 것으로도 전망됩니다.
현재 새로운 엔진시스템은 만디젤의 ME-GI와 바칠라의 X-DF가 경쟁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요. 선박 엔진의 양대 회사가 기술 경쟁을 벌이는 셈이죠. LNG선을 건조하는 조선소의 입장에서는 선주가 ME-GI와 X-DF 엔진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모두 건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물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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