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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야기] 선박의 이름을 용접기로 적는다?

samsungshi 2014. 3. 13. 09:15

선종별로 크기와 모양은 달라도 선박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바로~! 선박에 커다란 글씨로 선박회사 이름과 선박명을 새겨넣는다는 것인데요. 한번쯤은 '저 글자들은 어떻게 새겨넣는걸까?'하고 궁금해하셨던 분들 계실거예요. 오늘 그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 삼성중공업 레전드 사내기자 정종혁 기원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선박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선박의 이름을 용접기로 적는다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연필로 공책에 숙제를 하던 어릴적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가끔씩 산림이 우거진 곳이나 삼나무가 많은 곳을 산책하면 연필의 나무냄새가 회상을 불러일으키죠.

 노트에 필기한 사진
여전히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도 하고 공부를 위해서 필기를 하지만, 연필의 추억은 사라진지 오래고 이제는 볼펜으로 메모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컴퓨터와 일정한 양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을 요즘 흔하게 보고 있습니다.

온통 프린트 되는 소리, 복사기에서는 똑같은 모양의 서류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습…
가끔씩은 그 옛날의 아날로그가 그리울때가 있습니다.


대형 아날로그 - 글씨 용접
오늘은 진정한 대형 아날로그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삼성중공업에서 만드는 모든 선박은 선박회사명과 선박고유의 이름이 있습니다.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그런 글씨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쓴다는 것을 아는이가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용접기를 이용하여 적는다는 것을…

실제로 작업을 하는 이들을 엿볼까요?
보통 글씨나 숫자들은 선박의 바깥부분에 많이 새겨집니다. 철판과 철판을 한장씩 붙여가는 중에 글씨부위가 나타나면 사진에서와 같이 석필로 마킹모양과 똑같이 그려줍니다.



글자를 새기고 있는 작업자 모습
석필로 그려주는 이유는 용접의 강한 불빛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때도 석필로 그려진 하얀가루 만큼은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인데요. 그 가루조차도 초보에게는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흑유리가 용접불빛으로 부터 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므로 색이 굉장히 진하거든요. 실제로 태양을 바라봐도 은은한 달빛보다 연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글씨를 쓰려면 적어도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드래프트 마크 작업중인 두명의 직원
전압과 전류를 잘 조절해야 하고, 글씨를 쓸 때에는 팔이 조금이라도 떨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몸쪽으로 최대한 당겨서 글씨를 써내려갑니다. 이때 중간에 끊어지지 않게 가능하면 한번에 끝나야 합니다. 처음 스타트하면 다시 그 시작부위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죠. 초보자의 실력은 여기에서 표가 납니다. 연결부위가 많아서 수정을 한다던지, 또는 흰색의 석필가루를 못보고 아무것도 없는 철판에 용접을 하는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작업, 그래서 더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은 드래프트 마크를 적는 모습입니다. 1mm로 촌각을 다툰다면 웃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고도의 섬세함을 자랑합니다. 길이와 폭이 22m의 연결된 철판도 오차가 거의 없는 상태랍니다.

드래프트 마크(Draft Mark, 흘수표)란?
선박이 바다 위에 떠 있을때 물에 잠겨있는 부분의 깊이, 즉 아랫부분이 물에 잠기는 정도를 표시하기 위한 마크입니다. 화물이나 오일이 초과적재하지 않고, 항해구역이나 항구의 수심을 고려해야 할 때 알아야하는 그래서 절대 오차가 생겨서는 안되는 중요한 작업이죠.


새겨녛은 글자 모습
용접이 끝나고 나면 주위에 튀어나온 용접불똥 같은 것을 살짝 갈아서 없애줍니다.

이 작업을 해준 조부현 기원(판넬조립부판넬조립과)은 입사 20년차의 베테랑 사원입니다. "내가 새긴 숫자와 선박의 이름이 5대양6대주를 누빈다고 생각하니 보람도 느끼고, 더 이쁘게 적어줄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그의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터그 마크
TUG MARK(터그 마크) : 선박이 항구에 가까이 왔을 때, 자동차처럼 평형주차를 할 수가 없어 작은보트를 이용해서 밀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 화살표 방향에서 밀라는 뜻이죠. 아무래도 다른곳 보다는 이곳이 더 튼튼해야 마음놓고 밀어줄수가 있습니다.


글자를 새기고 있는 작업자
한자 한자 글씨를 새길때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세는 불편하지만 글씨를 쓰는 이 순간만큼은 무아지경에 빠지죠.


새겨진 글자 모습
가까이에서 볼때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멀리서보면 글자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도색 전의 글자 모습
아직 도색되기 전의 글자 모습입니다. 자세히보면 중간에 용접자국이 보이죠. 찾으셨나요?


도장 작업이 끝난 후 글자 모습
새겨진 글자와 숫자에 도장작업이 끝난 모습입니다.


완성된 드래프트 마크
앞에서 말했던 드래프트 마크가 보입니다. 멀리서보면 이렇게 이쁘게 잘 새겨져 있죠.


완성된 드래프트 마크2

저 또한 글자를 새겨봐서 이 일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요. 단언컨대 저렇게 쓰는것 조차 베테랑의 실력이 아니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깔끔하게 완성된 선명
이제 가끔씩 TV나 혹은 영화속에서 선박이 지나가면 이름이나 회사명을 그냥 흘려서 바라보지말고 '누군가가 용접기로 글자를 새겼구나'라며 바라봐주세요.


모든 글자 작업이 완성된 선박 모습
이렇게 삼성중공업에는 숨어있는 무림의 고수들이 많습니다. 묵묵히 자기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어 '세계최고'라는 수식어를 항상 달고 다닙니다. 요즘 학생들이 자주하는 말로 '님 좀 짱인듯'. 어딘가 불편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이 한마디에 수많은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당신이 최고라는 것에 동의한다는 무언의 함축적인 말이죠.

오늘은 오랜만에 연필을 꺼내어 어릴적 추억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가벼운 일기라도 적어보는게…